詩集
책과 아내에 대한 반성 / 권 순 진
증정 받은 시집 한권 얌전히 서가에 꼽혀있다
군소리 없이 순종하는 책은 그 시집만이 아니다
어쩌다 궁금해 조바심으로 산 책도 마찬가지다
이미 내 것이니 그리 급히 서둘게 없다 싶어
몇 장 넘기다 그 무리에 섞이면 곧장 암벽이다
두고두고 널 찾아 핥으리라 느긋한 마음으로
책들을 바라보지만 언제나 그 모습
몸 한번 뒤척이지 않은 채 처음 그대로다
덜 떨어진 사랑도 마찬가지다
이미 내 것이 된 사랑은 벽에 걸린 정물화 한 점
서가에 꽂혀있는 책 한 권처럼
조바심 내어 찾지 않아도 되는 전리품이었다
그러나 남에게서 잠시 빌린 것
지금 아니면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은 책에는
한꺼번에 빠져 읽듯이
사랑도 그렇게 잠시 빌린 사랑
스쳐지나가는 풋사랑에 더 열독한 것은 아니었는지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서가로 책을 운반하려는 욕심을 버려야지
지금 그것만으로 평생 읽고도 못다 읽어낼
문화요 예술이요 교양이요 지혜가 아니었던가
언제 저 책안의 활자들이 세상 밖으로 줄줄 뛰쳐나와
내 배경이 되어주고 나를 부축해 줄 것인가
있는 것 두고 새 것에 더 열망했던 무지여
그동안 참 미안했다 내 가련한 아내여
그리고 얌전하기만한 내 서가의 책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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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시집을 출판하여
인사차 한권샀다
주룩 넘기며 몇편 읽다가 벌써
책꽂이에서 암벽이 되어 가고 있다
전리품처럼 그저 그자리에 있으리라 했던
내마음을 콕 찝는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