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
밤새 편지지 앞에 두고
만년필 만지작거리며
쓰고 지우던 그랬던 편지
이제는 참 오래 되었다
컴퓨터란 기계와
휴대폰이란 기계가
그 모두를 대신하고 있으니
그날들의 감흥은 이제 없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빨간 우체통에 넣고
돌아서면
뭔가 아쉬웠던 그때
이런 가을날에는
더 편지 봉투가 불룩했었다
편지 쓰던 일들이
추억거리로 바뀌고
젊은 날들을 모아 두었던
낡은 편지 모음철은
이제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한때는 애지중지 했던
그런 세월의 흔적과 유산이
나이가 들어가는
요즘에는
새삼 더 그리워진다.
오늘은 왠지
문방구에 들러
참으로 오랜만에
편지지 한권을 사고 싶다
그래서
누구에게 보낼 건지
생각도 해 보고
기계자판에 잃어버린
글씨도 살아 있는지 한번 써 보고
몇 번을 찢고 난 다음에
그래도 남는 것을
가을편지로 보내 보고 싶다
편지 부치는 날
가을비가 내리면
멋진 우산을 골라 쓰고
가을편지를 보내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