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 /청담 장윤숙
너를 사랑하지 않고는 또 다른 뉘를 사랑할 수 있으랴 돌아 서면 따라오고 돌아 서면 저 만치 앞서 마중하는 너를
희나리로 붉어 간신히 나뭇가지에 메어달린 목숨 한숨 토하지만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어 낼 자신이 없다 겨울 나무야 눈꽃을 내려 슬퍼 말아라
빛 바랜 낙엽 이불속 벙거지 모자 벗어 던진 도토리마냥 뒹굴어 보지만 춥기는 매 한가지 너를 보면 언제나 붉어지는 사유 초록의 숲이 그 곳에 쉼 하기에
가슴앓이 오랜날들 등 휘어진 고목나무 넉넉한 버팀목에 울음 담는 너를 사랑하지 않고 어찌 견디랴
엄동설한 모진 추위 이겨 내지만 늘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는 빈 자리를 어찌하랴 사계절은 말없이 돌고 생의 나이태를 차곡차곡 쌓아만 가는데
가슴 저 밑바닥 그 언저리에 끓어 오르는 알 수 없는 심호흡 훗날에 긴 입맞춤으로 너를 불태울 수 있다면 붉은 낙엽에 빛 희어진 초라한 모습이면 또 어떠리
하늘은 여전히 저리 청아하고 높고 깊고 넓은데 이 한 몸 편히 쉴 그 자리 하나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