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어리

고흐의 열정

로사 2007. 12. 17. 15:12

 

불운의 화가 정열의 화가로 불리는 고흐는 네델란드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누이 동생이 남긴 回想의 고흐를 보면 이력이 잘 나타난다.

미술품 상점 점원, 어학교사, 목사가 되기 위한 신학 공부를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후, 그는 탄광지대에서 밀레의 판화를 모사하는 밑바닥 화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28살의 늦은 나이에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졸업후 그는 빈곤, 병마, 실연의 상처를 안고 프랑스 파리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당시 이름을 날리던 드가, 고갱등을 만나 인상파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후 그의 작품은 어두운 화풍에서 밝은 색채의 조화를 가지는 화풍으로 일대 변신을 하며

그렇게 그림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갖고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고향에 와 있던 사촌 누이를 만났다.

그녀는 이미 아이까지 있는 미망인 이었다.

그는 사촌 누이를 열열히 사랑하게 되었다.

(서양에선 남매간에도 결혼한 사례가 많이 있음)

 

고흐가 뜨거운 사랑에 빠져들자 누이는 웃으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흐는 더욱 집요하게 사랑을 요구했다.

그래서 누이는 어쩔 수 없이 고흐를 피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고흐는 단념하지 않았다.

암스테르담의 사촌 누이집으로 달려 갔을 때 미리 사정을 들은 백부가

네 사촌 누이는 집에 없다고 따 돌렸다.

그때 고흐는 무릎을 꿇고 피를 토하 듯 부르짖었다고 한다.

 

"제가 이 손을 뜨거운 램프의 불꽃위에 올려놓고 있을 동안 만이라도 좋으니

제발 누이를 만나게 해 주십시요"

 

고흐는 평생 세명의 여인을 사랑했지만 모두 이루지 못했다

사촌 누이에 대한 사랑의 열병은 그중에서 가장 뜨겁고 애절한 것이었다

 

불우했던 고흐

그 사랑의 아픔을 화폭에 남겼다.

15개월 동안 무려 2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생전에 단 1점만 팔렸다고 한다

 

어느날 정신병이 발작해 고갱과 다투다가 면도칼로 자신의 한 쪽 귀를 잘라버렸다.

그후 그는 다시 발작을 일으켜 결국엔 권총으로 자살하고 말았다.

누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햇던 고흐의 작품들...

평생 가난한 생활을 했던 그는 동생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그러나 죽은 후 십수년이 지난 뒤 그의 작품은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금 그의 작품은 피카소와 함께 가장 비싼 그림으로 팔리고 있다.

누구나 고흐를 불행한 천재 화가라고 한다.

살아 있을 때 불행했으니 불행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사랑하고픈 3명의 여인을 만나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그림을 그렸다.

그러니 꼭 불행 한 사람이라고만 말할 수 는 없다.

사랑 할만한 여인을 만났고 하고픈 일을 했으니 말이다.

 

.............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행운이고 기쁨이다.

무엇인가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다면 축복이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고흐

그는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을

무려 세명이나 만났고

비록 힘들지만 그는 열정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불행한 삶을 산 것일까?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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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불멸의 화가 반고흐 작품이

서울시립 미술관에서 전시 중

큰 맘 먹고 댕겨왔슴다.

2007년 11월 24일 ~ 2008년 03월 16일
전시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입장료 12.000원

천경자 화백의 작품도 다수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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