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꾸와 오라이
오늘은 쪼시가 좋은 날이다
세수를 하고 난닝구, 빤쓰 위에
메리야스 내복을 입으니 어머니께서
아침 밥상을 들여오셨다
얼른 독꾸리 하나를 더 걸친 다음
밥상에 달라붙었다
워낙 여러 사람이 함께 먹는 밥상이라
부지런히 숟가락을 놀리지 않으면
왕거니 하나 못 건져 먹는 게
우리 집 밥상이다
아침을 먹고 다시 등교 준비
곤색교복 우와기를 걸치고 거울을 보니
에리가 삐뚤어져 있기에
바로 잡고 호꾸를 채웠다
어느새
식구들 모두 출근 채비로 부산하다
막내 고모는 세라복을 입고
거울을 수십 번도 더 들여다본다
작은 아버지는 오늘
관공서라도 가시는지
와이사쓰에 조끼에 즈봉에
가다마이로 쭉 뽑으셨다
옆에서 보니 삐까삐까한 게
고급 기지인 듯싶었다
거기에다 오바까지 걸치니
완전히 영국 신사가 되었다
부엌을 보니 어머니는
몸뻬를 입은 채 가마솥에서
누룽지를 긁고 계셨다.
- 저자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쓴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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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기는 <빠꾸와 오라이> 저자 황대권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쓴 일기라고 한다
저자가 1955년생이니
1960년대 중반쯤이 일기의 배경이라고 추측하면 되겠다
일기 속에 나오는
곤색, 에리, 독꾸리, 우와기, 즈봉, 기지, 몸뻬, 삐까삐까
이 말들은
누구나 일본식 표현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릴 만큼
버려야 할 말 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