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어리

옛날 그 집

로사 2008. 5. 7. 19:20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옛날의 그 집 / 박 경 리

 

사람들은 수월하게 행과 불행을 얘기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불행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행복하다 한다

전자의 경우는 여자의 운명을 두고 한 말이겠고

후자의 경우는 名利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나 싶다

 

인류와 이 세상에 생을 받아 나온 모든 생명들의 삶의 부조리,

그것에 대응해 살아남는 모습,

존재의 본질적 추구를 같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옛날의 그 집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심고 고추심고 상추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애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다이어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카시아 꽃  (0) 2008.05.09
수국과 불두화  (0) 2008.05.08
사람과 인연  (0) 2008.05.05
필때와 질때  (0) 2008.05.03
5월을 맞아서  (0) 2008.05.01